감리교 인물 DB 해리스(Merriman Colbert Harris, 1846~1921)
오하이오 주 빌스빌에서 출생. 1863년 17세 때 남북전쟁에 출전하여 5년간 의용군으로 전투에 참가하였고 미감리회 피츠버그연회에 입회하고 1873년 알레게니대학을 졸업하고 그 해 12월 14일 일본 선교사로 부임하였다.
1874년 1월 24일 일본 북해도 하코다데 항구에 도착하여 선교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일본에서 캐나다 감리회와 미감리회를 연합하여 일본 감리회 선교연회를 조직하였다. 1882년 부인의 병 때문에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얼마 후 혼자 나와서 활동했으나 오래지 않아 다시 돌아갔다. 1886년 미국 안에 있는 일본인 교회의 선교 관리자가 되었다. 1904년 5월 미감리회 총회에서 한국과 일본 주재 감독으로 피선되어 다시 일본에 부임하여 한국보다 일본을 위하여 일하였고 일본 정부에서 훈장까지 받은 바 있다.
1914년 가을 미감리회 동양선교회가 중국 남경 금릉대학에서 모였을 때 노블(W.A. Noble) 선교사는 회의석상에서 해리스 감독을 면전에서 공격하고 책망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혹평하였다.
\"먹장같이 검은 흑인도 백인의 살결같이 결백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흰눈과 같이 흰 백인도 흑인의 살결같이 검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바로 여기 있는 해리스다. 이 해리스는 사소한 일본인의 뇌물에 눈이 어두워 한일합방에 협력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에 많은 해독을 주었다. 우리는 결코 그 일들을 용서할 수 없다. 한국인은 솔직하고 정의가 두텁고 두뇌가 명석한 민족이어서 세계 어느 곳에 가든지 동정과 사랑을 받고 있는데, 유독 해리스만은 한국인을 해치고 있으니 같은 미국인으로서도 용서할 수 없는 수치스러운 사람이다.\"
1916년 은퇴하고 귀국하여 1921년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