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 인물 DB 차경창(車敬昌, 1901. 5. 21∼1950 ?)


수난자

경기도 부천군 덕적면 서포리에서 출생. 1919년 3.1운동 당시 그는 향리의 합일(合一)학교 교사로 봉직하고 있었다. 김포군 월곶면에서 만세시위(3월 29일)에 참여하고 돌아온 덕적면 진리 사립 명덕(明德)학교 교사 임용우(林容雨) 및 잡화상 최복석(崔復錫) 등에게 연락을 받고 서포리서당 선생 이재관(李載寬) 및 주민 윤영규(尹寧圭) 등과 덕적도 만세시위를 준비했으며 마침내 4월 9일 명덕학교 운동회를 기하여 만세시위를 벌였다. 이후 주모자의 한 사람으로 체포되어 경성지방법원에서 8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옥중에서 전도를 받아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출옥 후 목회자가 될 것을 결심, 감리교 협성신학교에 입학하여 1928년 졸업하였다(제14회).

1929년부터 목회를 시작하여 영흥 대부교회, 1931년 영월교회에 부임하였고, 1933년 4월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1935년 제천교회, 1939년 원주읍교회에 부임하였고 그 해 원주지방 감리사를 역임하였다.

해방 후 1947년 9월 서울 수표교교회에 부임하여 전교인이 함께 어우러지는 목회를 하여 교회 내분을 치유하고 교회를 크게 부흥시켰다. 특히 청년, 학생들에게 신앙교육을 강조하여 학생, 청년부의 활동이 왕성하였다. 수표교교회에서 시무하던 중 한국전쟁을 만났고 공산군이 서울에 들어오던 날인 6월 28일, 외출하였다가 공산군에 피납된 후 행방불명이 되었다. 장남 차현희는 목사가 되어 종교교회 등에서 목회하다가 1969년 도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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