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 인물 DB 조상문(曺相文, 1898~1950 ?)


수난자

경기도 강화군 길상면에서 출생. 1925년 감리교 협성신학교를 졸업하였고 이듬해 부평 및 부천구역 전도사로 부임하여 목회를 시작하였다. 1928년 미감리회 조선연회에서 전영택, 이은택, 변홍규 등과 함께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이후 1931년 홍천서구역, 1932년 단양구역, 1933년에는 강문호 목사를 대신하여 횡성구역에서 목회를 하였다. 그가 시무할 때의 횡성교회는 청년회 활동이 활발했는데 55명의 청년들이 모여 엡윗청년회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또한 탁영재 전도사와 함께 주일학교를 위해서도 활발히 활동을 하였다. 1935년 충주구역, 1937년 원주구역에서 시무하였고 같은 해 원주지방 감리사를 역임하였다. 1939년 수원구역으로 옮겼고 수원지방 감리사를 역임했으며 이후 춘천ㆍ단양ㆍ강화읍교회를 담임하였다. 1949년 감독에 선출된 김유순 목사의 후임으로 서울 아현교회 13대 담임목사로 부임하였으며, 이때 총리원 이사, 전도국 위원에 피선되어 활동하였다. 당시 아현교회의 교인들은 그에 대해 성격이 자상하며 엄하고 모든 면에 꼼꼼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 당시 아현교회 교인은 2백 명이 넘었고 중등부가 40, 고등부가 40인으로 젊은이가 많았으며 부인 전혜숙(全惠淑)도 교회에 여러모로 봉사하였다고 한다.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 교인들의 피난 권유를 물리치고 가족만을 피난시킨 후 교회를 지키던 중 1950년 8월 23일 공산군 정치보위부원에게 체포된 후 북으로 끌려가 소식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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