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 인물 DB 정진수(鄭鎭洙, 1872. 6. 18~1949. 10. 10)


감리사

평남 용강군 대대면 영곡리에서 출생, 전통적인 유교 가문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한학을 수학하였고 1895년 3월 평양에 나갔다가 전도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었다. 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삼중학교 교사로 봉직하였고 평양 숭실학교에서 다시 수학하였으며 평양 장로교신학교에 입학하였다가 서울로 올라와 감리교 협성신학교에 입학하여 1914년에 졸업하였다(제5회). 1913년부터 미감리회 전도사로 목회를 시작하였다. 미감리회 선교사의 보고에 의하면 그가 살고 있는 농흥에서는 55 혹은 60가정 중에서 믿지 않는 가정이 7가정 정도밖에 없을 정도로 그곳에서 열심히 전도하였으며 보수가 없는 상태에서도 주님에 대한 기쁨의 봉사로 일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1915년 집사목사 안수를, 1918년 장로목사 안수를 각각 받았다. 그가 시무한 교회는 중화, 삼화, 진남포 이향리, 덕동, 영변읍 등지이며 1930~1933년에는 영변지방 감리사를 역임하였다. 1933년 은퇴하기까지 20여 년 목회하는 동안 교회당 설립 14처, 학교건물 설립 3처, 유치원 설립 2처, 주택건축 3처에 달했으며 한준해ㆍ이겸상ㆍ조애자ㆍ김진실 등 수많은 여전도사를 양성하였다. 동료목사들에게 \"나귀목사\"란 칭호를 들었다. 은퇴 후 진남포 탄부교회에서 봉사하다가 월남하여 서울 장남의 집에 머물던 중 1949년 10월 10일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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