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 인물 DB 정등운(鄭登雲, 1901. 10. 26~1987. 6. 11)
경기도 강화군 교동면 상룡리에서 출생. 교동 사립 동화(東化)학교를 졸업하였다(1915). 교동 동화학교는 교동 전도사 권신일이 1908년 설립하였고 1912년 당시 교동읍 초기 지도자 방족신(方足信)이 교장으로 봉직하고 있었던 학교다. 교동읍에는 또한 미감리회 해외여선교회에서 지원하여 설립된 동화여학교도 있었으나 동화학교와 함께 1930년 이전에 폐교되었다.
이후 그는 서울경신학교(1919), 피어선성서학원(1922), 일본 고베 칸사이학원 신학부(1928)를 졸업하였고 조선예수교 연합공의회 파송으로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전도사로 2년간 봉직하였으며 1931년 귀국하여 대부, 양덕원(1932~1933), 화도(1933~1934), 강화읍교회(1934~1942)에서 목회하였다.
정등운은 혁신교단이 출현한 1941~1943년 어간에 수원 종로교회(1942~1955)로 부임하였고 적극적인 친일파는 아니었지만 정춘수 목사의 혁신교단과 1943년의 \"일본기독교조선감리교단\" 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교무국장 직책으로 정춘수의 혁신교단에 참여하였다. 그 후 율목교회(1959~1960), 서울 만리현교회(1963~1972)에서 각각 시무하였다.
1937년 감리교 중부연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고 1954년 서울신문사 사장으로 3년간 봉직하기도 했으며 1968년 중부연회장에 피선되었고 1970년 감독(서리)을 역임하였다. 1972년 정년은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