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 인물 DB 박원백(朴元百, 1872. 3. 22~1938. 8. 11)


최초의 한국인 감리사

평남 강서군 증산면에서 출생. 어려서 한문을 공부하다가 가사 관계로 상업에 종사하였다. 1894년 평양에서 기독교에 입교하고, 1900년 3월 16일에 평양 남산현교회에서 노블(W.A. Noble)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1902년 권사가 되었으며, 1904년 12월 9일 전도사의 직첩을 받고 1908년 3월 15일 미감리회에서 집사목사 안수를 받았다. 1911년 장로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1913년 6월 감리교 협성신학교를 제2회로 졸업하였다.

박원백은 초기 한국 감리교회 지도자 중의 한 사람으로 1912년 한국인 최초로 평양지방 감리사 김창식과 함께 원주지방 감리사로 임명을 받았다. 1908년 해주읍교회에 부임하여 교회를 크게 부흥시켰던 박원백은 원주지방 감리사로서 원주는 물론 정선, 평창, 횡성, 영월, 평해, 울진, 삼척, 강릉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을 순회하며 전도하고 교회를 설립했다. 또한 1915년 여선교사 힐만(M. Hillman)이 원주지방에 부임하여 남녀공학제의 의정학교(義貞學校)를 설립하고 현대 교육을 시작하였는데 박원백은 의정학교의 교장직을 맡았다.

박원백 목사는 해주지방(1908~1911), 원주ㆍ강릉지방(1911~1916), 대전교회(1916~1918), 천안읍교회(1918~1922), 서울 용두리구역(1922~1929), 마포교회(1929~1931), 서강교회(1931~1937) 등지에서 충성된 신앙인으로 목회에 헌신하였으며, 영력이 충만하여 설교도 잘했다고 한다. 서강교회에서 목회하던 중 예배당 건물이 낡아 1933년 건축에 들어가 착공 1년 후인 1934년 9월 2일 봉헌식을 거행하는 업적을 남겼다. 1937년 5월에 은퇴하였고, 은퇴 후에도 계속해서 서강교회를 돕다가 1938년 8월 11일 서강 자택에서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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