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 인물 DB 데밍(Charles Scott Deming, 1876. 11. 17~1938. 3. 15)
미국 일리노이 주에서 출생한 그는 뉴욕대학교와 드루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뉴욕연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목회를 하다가 1905년 9월 13일 미남감리회 한국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내한하였다. 인천에 거주하여 한국어를 공부하며 서울지방과 해주지방 감리사를 역임하였다.
1911년 6월 안식년을 맞아 일시 귀국해서 결혼을 한 후 1919년 내한하여 감리교 협성신학교 조직신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연희전문학교와 피어선성경학교 강사를 역임하였다. 1927년에는 벙커 목사에 이어 조선예수교서회 총무로 1929년까지 시무했으며 그 해 만주 선교사로 자원하여 하얼빈 주재 북만주지방 감리사로 8년간 재임하면서 복음전도와 주일학교운동을 전개하였다. 1937년 12월 14일 안식년으로 귀국했다가 폐렴이 악화되어 1938년 3월 15일 뉴욕 브루클린에서 별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