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 인물 DB 김폴린(金保麟, 1898. 4. 10~1996. 10)


교육자. \"폴린\"이라는 이름은 바울(Paul)이라는 세례명으로, 그것이 여성명사화하여 된 것이다.


평남 강서군에서 출생. 그의 할머니인 전삼덕(全三德)은 서북지방에서 여성으로 제일 먼저 세례를 받고 전도부인으로 활동했으며 강서읍교회와 함종교회, 숭덕학교를 설립한 이였다. 이와 같은 신앙의 전통에서 자란 김폴린은 1916년 이화학당 중학부, 1919년 이화학당 대학부(예과)를 졸업하였다. 1920년 6월에는 홍에스더(洪愛施德)ㆍ김활란(金活蘭)ㆍ김함라(金含羅)ㆍ윤성덕(尹聖德)ㆍ김애은(金愛恩)ㆍ김신도(金信道)와 함께 이화학당 교사ㆍ학생으로 구성된 \"이화 7인 전도대\"로 활동하며 여성계몽강연을 열었다. 1923년 대학과를 제8회로 졸업하고 그 해에 이화학당 교사로 부임하였으며, 3.1운동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된 절제운동에도 참여하여 1926년부터 여자절제회 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또한 1930년 남.북감리교회가 연합되는 과정에서 전권위원 평신도 대표 중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으며, 1930년 12월의 기독교조선감리회 총회 때에는 미감리회 여선교회 총회특선위원으로 총회 창립에 일조하기도 하였다. 이어 1931년 미국에 유학하여 일리노이 주 에반스톤의 내셔널대학에 입학하여 1933년에 졸업하였다. 귀국 후 1934년부터 총리원 교육국 간사로 일하다가 다시 도미하여 1939년 일리노이 주 노스웨스트(North-West)대학에서 종교학을 전공하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학원에서 수학하였다. 해방 후 1946년 서울 여자기독교청년회(YWCA) 총무로 선임되었고, 1947년 다시 도미하여 내슈빌 주 스카릿여자대학에서 기독교교육을 전공하였고 역시 내슈빌의 피바디(Peabody)대학에서 일반 교육학을 연구한 후 귀국했다.


이후로 감리교신학대학에서 강의하면서 여성 및 기독교교육에 참여하였다. 1949년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기독교학생대회에 참석한 것을 비롯하여 1925년 미국 감리교 총회와 1958년 일본에서 열린 세계기독교교육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였다. 1958년 한국 여자기독교청년회 연합회 이사로 선출되었고, 기독교대한감리회 여선교회연합회 교육부장(1957~1965), 기독교교육협회 공과작성위원, 〈새가정〉 편집위원, 기독교서회 편집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90년 감리교 \"자치 60주년 기념대회\"에서 표창을 받기도 한 김폴린은 백세를 두 달 앞둔 1996년 10월, 99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저서:《한국기독교교육사》;《예배법》;《에덴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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