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 인물 DB 김천애(金天愛, 1919~1995. 3. 30)
평안남도 가성에서 감리교 목사의 딸로 출생하였다. 평양 정의여자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1942년에 도쿄 무사시노 음악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해 각 음악대학 졸업생 대표들의 음악회로 히비야공회당에서 열린 \"전일본신인음악회\"에 무사시노 대표로 참가하여 독일 가곡과 한국 가곡 \"봉선화\"를 불러 큰 호평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민족의 애환과 희망을 노래한 봉선화가 한국민의 애창곡이 된 바 있다. 그러나 그는 이로 인해 일본 경찰의 연행과 검속을 여러 차례 받는 수난을 당하기도 하였다.
귀국 후 관현악단 서울심포니의 창단멤버로 활동하였으며 해방 후에는 현제명 등과 서울 음악대학의 전신인 남산음악학교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그 후 숙명여대의 교수와 음대 학장으로 많은 제자들을 길러 내었다. 계속적으로 교회 음악활동에도 심혈을 쏟았고 교회 순회연주도 여러 차례 가졌다. 1972년 미국으로 이민, 재미한인교회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음악활동을 해 오다가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76세의 일기로 별세하였다.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