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 인물 DB 김병제(金秉濟, 1872. 6. 2∼1945. 9. 7)


감리사

충청남도 공주군 계룡면 경천리에서 유복자로 태어남. 어릴 때 한문을 수학한 후 서울에 올라와 민영휘의 주선으로 전라도 남원군에서 참봉이라는 관직에 나가기도 했다. 다시 서울에 올라와 말타기와 활쏘기에만 전력하다가 30세 때에 고향에서 윌리엄즈(F.E.C. Williams, 禹利岩) 선교사의 전도와 친절한 권고에 감복하여 기독교인이 되었다. 믿는 날부터 성경을 손에서 놓지 않고 열독하다가 감리교 협성신학교에 입학하여 1915년 졸업하였다(제3회). 1913년 연회에 학습인으로 천거되어 1915년 4월 25일 집사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1917년 장로목사 안수를 받았다. 논산(1913∼1917), 홍성(1917∼1922), 천안(1922∼1929), 홍성(1929∼1933), 삽교(1933∼1934) 등 충남을 중심으로 목회를 전개하였고, 홍성지방 감리사를 역임하였다. 이후 1934년 3월에 은퇴했다. 은퇴 후 홍성에 주택을 정하고 지성껏 교회를 돕다가 94세를 일기로 1945년 세상을 떠났다.

김병제 목사는 충남 일대에 전도 안한 곳이 없을 정도여서 교회를 핍박하고 박해하던 완고한 양반들도 그가 나타나면 피하고 숨었다. 그러나 그는 한마디 불쾌한 말도 없이 웃으며 화평으로 기독교 진리를 설명하여 그 양반들 중에서도 눈물을 흘리며 잘못을 뉘우치고 예수를 믿는 경우가 많았다. 이로 인해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모두 김병제 목사를 찾아 연회에서는 김병제 목사를 그런 곳에 파견하였고, 김 목사가 가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되어 ‘명 감리사’로 칭찬을 받았다. 또 웅변에도 천재적인 소질이 있어 설교를 통해 많은 사람을 울리고 웃기되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심령을 감복시키는 성령의 역사를 나타냈다. 그리고 그를 칭찬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 같은 죄인 내 입은 더럽고 내 몸도 더러우나 주님께 그대로 바쳤더니 주님께서 쓰시는 대로 순종한 것뿐이지요”라며 자기를 간증하면서 “누구든지 자기 수단, 자기 지혜, 자기 완력으로 교회 일을 하려면 큰 실패가 그 앞에 있을 것을 나는 분명히 안다”고 권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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