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 인물 DB 강종근(姜琮根, 1904. 9. 26∼1942. 6. 3)
평안남도 강서군 증산면에서 태어남. 1910년 부모의 신앙을 따라 어렸을 때부터 예수를 믿기 시작하였으며 1925년에 배재학교를 졸업하였다. 1928년 감리교 협성신학교를 졸업하면서 철원 연천교회에서 시무하였다.
1930년 9월 기독교조선감리회 동부연회에서 집사목사 안수를 받고, 1935년 양주 창동교회, 1937년 9월 철원제일교회로 파송받아 열심히 목회하면서 교회를 부흥시켰다. 그는 교인은 물론 일반 불신자들에게도 존경과 신임을 받았다. 따라서 일본 경찰은 교회 행사에 일일이 간섭하고 방해하며 강종근 목사를 호출하여 방해하곤 하였다. 1940년 6월 철원제일교회에서 시무하던 중 조선총독부의 “사상범 예비검속령”에 의해 구속되어 1년형을 선고받은 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곳에서 받은 고문으로 신병이 약해지자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겼으나 회생하지 못하고 아내 윤희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주를 따라간다. 마음이 기쁘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그때가 1942년 6월 3일이었다. 윤희성 여사는 아현동에 신성교회를 설립하고 예배당을 건축하였으며 장로로서 충성을 다해 교회를 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