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학장. 남감리교회 감독. 5월 17일 몬타나주 페이트에서 출생하였고 1869년 뉴욕 유니온신학교를 졸업하면서 목회를 시작하였으며 1870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1878년 명예 신학박사 학위를 받는 한편 센트럴대학 학장으로 취임하였고 1886년 감독에 피선되면서 동시에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남감리교회 감독으로서 브라질, 멕시코, 일본, 중국 등 선교사업을 관장하던 중 1895년 8월 미국에서 공부하고 귀국한 윤치호로부터 조선선교 요청 서신을 받은 헨드릭스 감독은 리드 목사를 대동하고 그해 10월 13일 인천 경우, 서울에 들어왔다. 그는 윤치호의 안내로 고종 황제를 알현하고 선교사업을 상주하여 허락을 받는데 성공했다. 당시 황제는 명성 황후의 시해사건으로 마음이 어두울 때였으나 한국도 하루 속히 개화되어야 한다는 정신에 헨드릭스 감독을 극진히 대우하며 “어서 좋은 선생을 많이 보내 우리를 깨우쳐 주시오”하고 허락보다 요청에 가까운 부탁을 하였던 것이다. 헨드릭스 감독은 내한한 지 8일 만인 그달 21일 중국 상해로 돌아가 즉시 서울에 동행했던 리드 박사를 한국 선교사로 파송하였고 리드 박사는 1896년 8월 14일 가족을 동반하여 서울에 들어와 남송현(한국은행 자리)에 구입한 가옥에 입주함으로 남감리교회의 한국 선교사업이 시작되었으며 그 뒤로 콜리어(C. T. Collyer, 고영복)와 캠벨(J. P. Campbell, 강모인姜慕仁)이 들어와 선교사업을 시작했다. 리드 박사 이하 콜이어와 캠벨 등 초기 남감리교의 한국 선교사들은 모두 중국 선교사로 왔으나 기후 관계로 타 선교지를 구하던 차 한국의 길이 열리어 즉시 학국 선교사로 들어왔던 것이다. 헨드릭스 감독은 워싱톤D.C에서 11월 11일 별세하였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