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 외국인선교사 DB 맥머리(McMurry, Willima F., 1864-1934)


미남감리교회의 감독. 6월 29일 쉘비에서 윌리엄 웨슬리 맥머리의 아들로 출생한 윌리엄 F. 맥머리는 1880-1882년 성 촬스대학과 1882-1885년 센트럴대학에서 각각 공부하였고 후일 센트럴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887년 남감리교회 미주리연회에 입회한 후 15년간 목회하고 4년간 장로사를 역임한 후 1906년 5월 남감리교회 회당 확장부 총무로 피선되어 12년간을 시무하며 많은 교회를 확장시키는 실적을 올렸다.
1918년 5월 조지아주 미틀랜트에서 회집된 남감리교회 총회에서 동양(한국, 일본, 중국)에 감독을 주재시키기로 결정한 후 감독을 선택한 결과 바로 맥머리 감독이 추대되었다. 맥머리 감독은 그해 10월 30일 개성에서 모인 한국 남감리교 선교연회에 참석하여 한국선교연회를 독립연회로 창립하였다. 창립회원은 선교사 콜리어, 하디, 무스(불참), 크램(불참), 저다인, 스톡스, 브래넌(불참), 터너, 앤더슨, 히치 등 10명이었고 평신도 대표는 김기태, 이창환, 정춘수, 이공선, 양창화, 신후승, 김인수, 조관호 등 8명이었다. 이 연회에 새로 허입한 한국인 목사는 이화춘, 김영학, 유시국, 신공숙, 정재국, 강조원, 유한익, 양주삼, 김지환, 한인수 등 10명이었고 선교사로 연회 입회한 이는 최일라, 윔스 등 2인이었다. 집사목사 안수를 받은 이는 유한익, 최수영, 유경상, 배선범, 염석홍, 이석원 등 6명이었다.
이 연회에서 미국 감리교 해외 선교 100주년 기념으로 한국에서 사업할 것을 결의하는 한편 기념사업위원회 총무로 양주삼 박사를 선택하였다. 맥머리 감독은 4년간 동양 감독으로 피선되었으나 한국에 오기는 첫 해 한 번뿐이요, 1919년부터 3년간은 램버트 감독이 내한하여 연회를 사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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